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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 쓰기

Day 15 | 상대적 가치판단

 객관주의는 ‘도덕 법칙이 존재한다.’라는 관점이다. 모든 사회에서 따를만한 도덕 법칙이 있기에 그것을 어기면 악이고, 그것을 따르면 선이라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기독교가 신적인 것을 옳은 것, 악마적인 것을 그른 것이라 규정하듯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 것이다. 기존의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이념이 바로 객관주의이다. 아스토텔레스도 이것을 지지하며 “다른 나라를 여행할수록 절대적인 규범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양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며 그곳의 문화를 뿌리 뽑았다. 그들의 종교와 풍습은 ‘미개’하다고 칭하며 처단했다. 총과 칼로 그들의 법과 도덕을 없애자, 수많은 고아와 불행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윤리관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문화와 전통, 환경에 따라 다른 도덕관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의 우열을 매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윤리 상대주의라고 한다. 윤리 상대주의에도 한계가 존재했다. 다수의 사람이 윤리의 기준이라면 그것을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치와 제국주의이다.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나치와 제국주의도 옳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직관에 맞지 않는다.
 테드 번디는 연쇄 살인마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범행 동기를 밝혔다. “저는 법이란 사회적 가치 판단을 명시해 놓은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처벌이 두렵지 않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설명하자면, 그는 법을 지켜야 하는 유일한 이유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처벌을 감수한다면 그 행동을 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윤리 상대주의의 한계점이다. 테드 번디는 자신의 가치 판단으로 사회적 가치 판단을 부정했다. 윤리 상대주의에 따르면 그의 행위는 옳다.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가치판단은 결코 보편적으로 될 수 없다. 그리되었을 경우 큰 혼란과 인류의 존속까지도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관점은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의 사이였다. 객관적인 윤리 법칙이 존재하나, 그것의 개인이 반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나에게 사회의 윤리 법칙을 대체 할 만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테드 번디의 사례로 근본적으로 오류가 생겼다. 자신의 가치판단을 내세워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어기려는 질서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한 경우’에만 나의 가치판단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전쟁 상황에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 원칙을 위반하려 한다. 이때 한 사람은 쾌락을 위해 살인하고, 한 사람은 가족과 국가와 전우를 위해 적군을 죽인다면 후자의 사람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 원칙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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