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아기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것을 근거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하곤 한다. 태생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교육과 사회 활동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는 순자와 홉스가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이기주의와 불의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존재하기에 약자가 보호받고, 정의가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사회가 교화시킨 덕분이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모두 악하게 태어났지만, 사회적 활동을 통해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선함을 갖고고 태어났다는 관점도 있다. 이유 없는 선행은 존재하지만 이유 없는 악행은 상상하기 어렵다. 악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이익이 있어야 한다. 반면 선한 행동은 이익이 필수적이지 않다. 한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자. 한 버튼이 있는데, 이걸 누르면 눈앞에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아무런 대가도 없고, 내가 누르든 안 누르든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내가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버튼을 누를 것이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테니까. 인간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나에게 이입하는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타인을 자신처럼 여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선함을 갖고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맹자는 인간이 공감과 연민을 가졌다는 점에서 누구나 선함을 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교육이나 사회적 활동을 겪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인간에게는 선함도, 악함도 없이 백지상태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이 관점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인간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다는 관점과 선과 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크는 전자의 관점으로 백지설을 주장한다. 선한 환경에서 자란 인간은 선하게 자라고, 악한 환경에서 자란 인간은 악해진다는 것이다. 고자와 니체는 후자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고자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은 선과 악으로만 나눠지지 않는다. 그사이 무수히 많은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니체는 더 과격하게 선과 악은 그저 인간 판단하는 것이며, 그것을 초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는 인간의 본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다. 선하게 태어났든 악하게 태어났든, 고유한 판단을 내린다. 어떤 사람도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을 선과 악으로 범주화할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선하게 태어났어도, 악하게 태어났어도, 백지로 태어났어도,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주관성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의자는 앉는 것이라는 목적이 있기에 본질이 중요하지만, 인간은 목적 없이 세상에 왔기에 본질과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다. 요약하자면 어떤 본성을 갖고 태어났든, 지금 나는 자유의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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