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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가 찐따인 이유

  산에서 곰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가? 절대 내가 연약한 먹잇감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한다. 이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절대 등돌리지 않은 채로, 싸울 태세를 취하고 고함을 질러야한다. 그 뒤에 뒷걸음질을 치며 "너가 나에게 싸움을 걸지 않으면 나는 너랑 싸울 생각은 없다. 다만 너가 나에게 싸움을 건다면 반드시 너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다."라고 알려줘야한다. 야생에서는 절대 나에게 상처입힐 상대와는 싸워서는 안된다. 작은 상처도 생존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는 싸우면 죽고, 강자는 다친다. 그러니 약자가 양보하고 강자가 싸움을 걸지 않는 것이 이득이다. 그렇기에 생물들은 서열을 나눈다.

 

 

  인간은 현재 문명을 이루어 살고 있지만, 유전자는 수렵 채집 시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더 심하게 말하면 우리는 침팬지와 1%정도 밖에 유전자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그 시절 그대로 우두머리에게 복종하고 그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 가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고, 더 전에는 신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문화와 모든 전통에서 서열이 존재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우리의 이런 뇌구조로 인해서 절대로 완전한 평등을 이룩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서열을 나누는 방식이 쉬웠다. 신분, 가문, 권력, 학력 등 문자로 표기 가능한 것으로 서열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시대에는 이 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서열을 표기가능한 것으로 나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개인의 판단에 의해 서열을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뇌는 거의 완벽하게 인간의 서열을 나눈다. 기준은 표기 불가능한 것 임으로 명확하지는 않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여유, 힘, 시험 성적, 외모 등 다양한 요소로 서열을 만든다. 이러한 기준들은 대게 사람에 따라 다른 비율로 적용된다. 누군가에게 힘은 서열에 전혀 영향을 안 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결정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되는 사항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서열이 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를 최하위로 여긴다. 경쟁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서열의 본질은 경쟁에 대한 적극성이다. 대부분은 상위 서열일수록 경쟁에서 더 적극적이다. 그들은 낮은 서열보다 잃을 것이 적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잃을 것이 없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아래 서열은 잃을 확률이 높고, 윗 서열은 잃을 확률이 낮다. 배팅 또한 다르다. 윗 서열은 기껏해야 재산이나 명예지만, 아랫 서열은 목숨까지도 위협된다. 낮은 서열은 자동으로 경쟁을 피한다. 맞을까봐 무섭거나, 내 의견이 반박당할까봐,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질까봐 등등 내 욕구나 의지를 경쟁을 피하기 위해 머뭇한다면 우리의 뇌는 우리의 서열을 낮춘다. 고작 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우리 뇌에 서열 시스템이 재정립 된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

 

 

  서열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조던 피터슨 교수는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야수가 되어라." 약탈당할 바에는 차라리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 투쟁하라. 경쟁에서 절대 회피하지 마라. 내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결코 쟁취하라. 나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목격하면 반드시 맞서 싸워라. 절대 불의에 굴복하지 마라. 어깨를 펴고 당당히 서라. 그냥 간단하게 찐따같이 행동하지 말고 당당해져라. 어떤 괴롭힘도 너의 의지와 생각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너도 너의 의지와 생각을 찌질하게 바꾸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