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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2 | 도덕과 이윤 사이

상상혁혁 2024. 4. 22. 00:42

 

 투명 인간이 되는 반지가 있다고 해보자. 이것을 끼는 순간 타인에게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투명 인간으로 한 행동의 책임을 결코 지지 않는다. 이 반지를 가지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것은 플라톤이 제안한 ‘기게스의 반지’이다.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가 있더라도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신은 사람들이 지은 덕이나 악덕을 근거로 보상하거나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관점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을 개입시켰다는 점에서 사람은 덕과 악덕을 올바로 보상이나 처벌을 하지 못한다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덕적인 삶은 이윤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살았음에도 비참한 삶을 산 사람과 비열함에도 선망받는 삶을 산 사람도 있다. 권선징악을 얼마나 믿는지는 몰라도, 반례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 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자. 두 인생이 있다. 덕행을 펼쳤지만 누명을 쓴 뒤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하는 사람과 그를 누명 씌운 댓가로 부유함과 명예를 얻은 사람. 한가지 삶을 살아야한다면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전자를 택해야할 것이다. 전자는 더 선함으로 더 행복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다. 선한 심성이 행복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무의미하게 죽어갈 때, 악한 이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카뮈는 이런 세상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세가지 방법을 말한다. ‘자살’, ‘희망’, ‘반항’이다. 자살은 도피다. 희망은 현실 부정이다. 권선징악이나 내세의 심판 등 현생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반항은 부조리를 인정하고, 견뎌내는 것이다. ‘옳은 행동을 해도 불행할 수 있다.’라는 부조리를 인정하고, 옳은 행동을 하면 된다. 우리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옳다고 믿는 삶을 사는 것 이외에 어떤 목적이 있을까. 그리고 이익을 위해 옳은 행동을 하는 것보다 손해를 감수하며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낭만적이지 않은가?